2022년 8월 25일 목요일

재와 환상의 그림갈 19권 11장

 0119A660 君は僕の運命(너는 나의 운명) 날개를 접은 백조를 연상시키는 성곽의 모습이 검은 수면 위에 비치고 있다. 대량의 등불로 비치고 있는 저 성은 실제, 오크 말로 웨하고란, 백조성이라 불리고 있는 모양이다. 눌러찌부러진 호리병 같은 모습을 한 칸더호수는, 아무래도 그림갈 최대의 호수라고 한다. 백조성과 그 성하마을인 개가凱歌의 수도(그로즈덴달)는, 칸더 호수의 서안(西岸), 호리병의 잘록한 서쪽 부분에 위치해 있다. 그 잘록한 모양이 독특해, 남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기도 하여, 쿠자크와 세토라가 있는 이 남안(南岸)에서 백조성까지는 5,.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오늘 밤은 바람이 없어 호수면이 거의 거울처럼 변해 있어, 흡사 백조성이 2개가 존재하는 것 처럼 보인다. 쿠자크는 팔장을 끼고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별같은 것도 마구 이쁘고」

중얼거리는 쿠자크의 뒤통수를, 지체없이 세토라가 때렸다. 쿠자크는 무심코 ‘아파’ 하고 소리를 낼 뻔했지만,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알고있어, 알고 있다고요’ 하고 쿠자크는 몸짓으로 나타내 보였다. 이 칸더 호수 남안에 있는 것은 쿠자크와 세토라뿐만이 아니다. ‘어설프게 말하지 마, 조용히 해’ 라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조심해야할 일은 없지 않나? 쿠자크와 세토라는 호수 가장자리에 있다. 이 근처는 거의 모래사장으로, 앞쪽으로 몇미터만 가면 물가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남정군의 야영지가 펼쳐져 있다. 오크나 불사족, 그리고 회색엘프로 구성된 남정군은 흑금연산에서 힘없이 뚜벅뚜벅 행군해 와서, 칸더호수 남안의 어촌 근처에서 드디어 최후의 야영이라는 멋을 부리고 있다. 그렇다해도, 목책을 세우거나, 망루를 만드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등불이 여기저기 피워져 있거나, 횃불을 든 보초가 여기저기 서 있거나, 천천히 걷고 있기도 하지만, 만반의 태세로 경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은 주지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미 한밤 중을 넘기고 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건 아닐지…… 남정군은 아침이 오면 수KM 서쪽으로 전진 해, 칸더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루코라는 강위에 놓여진 다리를 건넌다. 그러면, 그 후 그로즈덴달까지 세토라왈 「지척지간」이다. 지척지간, 이라는 것은 코앞, 요컨데, 바로 근처, 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내일, 은 아니다. 이미 날짜가 바뀌었으니 오늘이다. 남정군은 오늘 중으로 그로즈덴달에 입성한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림자 숲에서 엘프들을 쫓아내고, 오르타나를 함락시키고, 드워프 여왕을 죽이고, 대단한 전과를 올리고 돌아왔으니, 병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뭐 개선하는 기분 아닐까? 여러 일이 있었고, 지금도 여러 일이 있기에, 사실 이 남정군은 본대는 아니다. 별대인 것인다. 잠보의 포르간등을 포함한 본대는 흑금연산에 남아있고, 마가・오도하인지 하는 오크가 여기까지 별대를 이끌고 왔다. 말단 병사와는 달리, 가령 그 마가・오도하 같은 지휘관 클래스는 착잡한 심정일지 모른다. 적어도, 이겼어 이겼다고 하며 들떠 자아 집으로 돌아가 푹 쉬자 하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여러 일이 있었고 말이지」 또 깜빡 중얼거리고 말았다. 당연지사, 또 다시 쿠자크는 세토라에게 맞았다. 미안 미안하고 쿠자크는 손짓으로 사과해 보였다. 세토라는 어의없는 얼굴이다. 그런 부분은 변함이 없다. 쿠자크 자신,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실감한다. 물론, 전혀, 뭐 하나도, 어디라도 변하지 않았다 고는 말할 수 없다. 일례를 들면, 둘은 새까만 칸더 호숫가에 서성거리고 있지만, 쿠자크는 세토라의 얼굴히 또렷이 보인다. 세토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몸이 마구 가볍다. 눈에 띄지 않도록 지금은 갑옷을 입고 있지 않은 채, 검은 옷을 착용하고 있지만, 별로 그 때문은 아니다. 알몸이라도 예전과는 다르다. 몹시 기운차다. 기억은 있다. 이렇게 되기 전의 일은 잊지 않았다. 하루히로, 란타, 유메도 기억한다. 흑금연산의 철혈왕국을 탈출한 뒤, 쿠자크는, 그리고 세토라는 한번 죽었다. 그 순간의 일은 솔직히, 애매하지만, ‘위험해, 죽는다’ 라고 생각했고, 아마 쿠자크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되살아 난 뒤는, 아마 몸속이 엉망진창에, 머리속이 질퍽질퍽 했었다. 조금씩 정리되어 가, 어떤 타이밍에, ‘그렇구나, 메리씨 의 말을 들으면 돼’  하고 생각했다. 외모는 메리지만 메리는 아니다. 그건 쿠자크도 알고 있었지만, ‘일단 메리씨의 말대로 하자’ 고 결정했다. ‘그것이 제일 좋다. 옳은 일 이다’고 쿠자크는 이해했다. 변하지 않은 부분은 변하지 않았지만, 역시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쿠자크는 느끼고 있다. 나쁘지는 않다. 지금의 자신으로 있는 것이 불쾌하지는 않다. 즐겁나? 즐겁지 않나? 나름대로 즐겁다. 쿠자크는 지금의 자신을 즐기고 있다. 세토라가 쿠자크의 등을 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슬슬 가자’는 신호다. 쿠자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두사람은 목도리를 눈 바로 아래까지 끌어 올리고, 외투의 후드를 덮어썼다. 이것으로 복면을 쓰고 있는 것과 거의 같다. 거의 피부가 노출되지 않는다. 마침 검정일색이다. 세토라가 앞서 가고, 쿠자크가 따라간다. 문득, 쿠자크는 생각한다, 나, 이렇게 거침없이 획획 걸었었던가? 전에는 뭔가, 어떤 일을 해도 순조롭게 척척 되지 않는다랄까, 답답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 하고 머리속에 그려도, 좀처럼 그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 덩치가 큰 탓이다. 쿠자크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키가 너무 크다. 팔다리가 너무 길다. 몸통도 길다. 다루기 버거운 것이다. ‘근력이 부족한건가?’ 해서, 단련해 보기도 했지만, 근육을 키워 체중이 늘자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딱 좋은 안배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찾을 수 없는 일로, 자신의 베스트를 알 수 없었다. 다른사람에게 상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자신의 몸에 대한 것이다. 결국, 쿠자크 자신이 어떻게 할 수 밖에 없다. 무아지경으로 집중해 있는 듯한 때 이외에는,  ‘난 느릿하구나’ 든가 ‘왜 이렇게 서투를까?’ 든가 ‘이 덩치에 비해 파워가 부족하구나’ 든가, 어쨌든 좋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예전의 쿠자크는 적지 않은 자신의 결점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타인에게 엄격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도 달콤했던 것이다. 응석 부리는걸 좋아했고, 응석을 받아주길 원하니까 타인에게도 달콤해졌다. ‘비교적 기분나쁜 녀석이었구만, 나.’ 지금의 쿠자크는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녀석이 있어도, 뭐 나쁘진 않지만.’ 남의 일처럼, 그렇게 생각한다. 세토라와 쿠자크는 점점 남정군 야영지로 다가간다. 야영지 바깥 가장자리 쪽에는 역시 보초가 우두커니 서 있다. 세토라는 대담하게도 보초와 보초 사이를 천연덕스럽게 걸어간다. 쿠자크도 따라간다. 오크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다. 두꺼운 천이나 모피를 땅에 깔고 그 위에 누워있는 자도 있고, 땅바닥에 그대로 누워있는 자들도 있다. 수백명의 오크가 노숙하고 있고, 대체로 그 중심에는 천막이 있을 것이다. 아마 부대장은 천막 속에 잠들어 있으리라. 좋은 처지다. 천막 근처에는 횃불을 든 호위병이 서 있다.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휘청휘청 걸어가는 오크도 있다. 용변이라도 보러 가는 것이리라. 아무도 세토라나 쿠자크를 눈치채지 못한다. 눈에 띄여도, 설마 침입자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야영지 중심부에 훌륭한 원형의 천막이 펴져 있다. 저 크기라면, 일 가족 혹은 두 가족이 거주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오크 대부분은, 황야에 천막을 치고 살았던 모양이다. 저 천막 정도는 필경 씨족장 집이라고 해야할 정도의 것이리라. 커다란 천막이, 그보다 작은 다섯내지 여섯의 천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저 일대는 꽤 밝고, 보초의 수도 역시 많다. 오크들은 예전부터, 거대한 멧돼지 같은 동물을 사육해 타고 다니는 모양인데, 그 짐승도 여러마리 줄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남정군 별대를 이끌고 있는 마가・오도하는 아마 저 커다란 천막 안에 있을 것이다. 의 부탁으로 사흘 전 그로즈덴달을 향해 출발하기 전까지, 쿠자크들은 철혈왕국을 방어하고 있었다. 최초는 왕과 쿠자크, 그리고 세토라 밖에 없어 외로울 뿐이었지만, 다행히 옛 철혈왕국 안과 그 주변에는 드워프와 엘프, 오크등의 시신이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이제 완전히 각성해 버린 왕은, 위대하다고 할지, 웃음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힘으로, 그것을 바꿔 변화 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왕의 신민, 불사족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부서져 움직이지 않게된 불사족도 새로운 불사족의 파츠로 재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불사족은 세카이슈에 강하다. 애초에 왕은, 세카이슈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 불사족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불사족들이 인간의 벽이 아닌 불사족의 벽을 만들어 보이면, 세카이슈는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카이슈 이외에도, 적은 있었고, 남정군 본대 무리들이 어떻게든 옛 철혈왕국으로 들어오려 갖은 수를 써 왔다. 쿠자크와 세토라는 왕의 부탁을 받아 주로 그것을 처리했다. 죽일 수 밖에 없는 경우는 죽였지만, 몇몇은 생포해 왕이 심문했다. 왕은 인간의 말이든 오크의 말이든, 물론 불사족의 말도 뭐든 술술술이다. 이렇게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왕은 쿠자크와 세토라에게 이번 일을 의뢰했다. 경위로 보면, 우격다짐으로 명령 받아도 거부하지는 않을텐데, 일일이 부탁하는 주변이 왕답다. 왕은 ‘왕이라 불리는 것도 싫다’는 둥…… 조만간, 뭔가 다른 호칭을 생각해 주고 싶다. 마가・오도하는 유력한 씨족 오도하의 씨족장으로, 처음부터 디프・고근 대왕과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디프・고근 도 마가・오도하 도 씨족장으로, 고근 씨족과 오도하 씨족 사이에서도 특히 우열이 없었던 모양이다. 격으로서 비슷할 정도로, 요컨데 라이벌이었을 것이다. 마가・오도하 입장에서는 동격인 디프・ 고근을 따라야할 도리는 없다. 그러니까, 마가・오도하는 당초, ‘해볼테냐 이자식’ 하는 파이팅 포즈를 잡았던 모양인데, 엮여 싸우자 꼼짝없이 당하거나, 짖궂은 짓을 당하거나, 부하가 회유되어 돌아 눕거나, 화가 나서 떼지어 습격하면 매복당해 혼쭐이 나거나, 그러는 사이에 주변을 정리 당해, 드디어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마가・오도하는, ‘신하로 따르는 대신 오도하 씨족을 확실히 우대해라, 아니면 전멸할 때까지 싸워주지’랄까 ‘너죽고 나죽자’ 정도의 각오를 보였다. 디프・고근은, ‘할말 하잖아, 역시 마음에 들어, 남자 답군’하는식으로 감탄해, 기꺼이 받아들인 모양이다. 마가・오도하는 오도하 씨족의 전통에 따라, 체모를 녹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대치도(大薙刀)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호걸이라 한다. 그래도, 오크들 사이에서는 무투파라기보다 두뇌파로, 현명한 남자, 로 여겨진다. 박식하고, 읽고 쓰기도 제대로 가능해, 쿠자크들의 왕만큼은 아니겠지만, 어학에도 능통하다고 한다. 오크 언어이외의 언어도 구사하고, 오크의 잠보등과도 비교적 친하다. 지금은 디프・고근 왕의 심복중 한명으로, 직언할 수 있는 관계인 모양이다. (역자주-[치도,薙刀] 중국의 언월도 처럼 긴자루 끝에 휘어진 외날의 도가 달린 장병기) 세토라는 마가・오도하의 천막을 둘러싼 천막과 천막사이를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쿠자크도 뒤를 쫒는다.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초가 있었는데도, 잘도 발각되지 않았다. 예전의 쿠자크 였다면, 분명 꽤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지금도 괜찮아, 절대 아무렇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어떨까? 발각되지 않을까? 하고 위기를 느끼고 있다.  아니, 위기 와는 또 다를지 모른다. 공포스러운 마음이 거의 없다. 거의, 랄까, 전혀 없다. 위험하게 되면 되는대로, 그때 무슨일이 벌어질지, 자신이 어떻게될지도 포함해, 기대된다.  기대되는 일은 여러가지 있다. 예를들어, 하루히로를 만나고 싶다. 쿠자크와 재회하면, 하루히로는 어떤 얼굴을 할지. 지금의 쿠자크를 알게되면, 하루히로은 울지, 웃을지, 무서워하거나, 혼란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하루히로를 죽인다면, 쿠자크는 어떤 느낌이 들까? 이전의 쿠자크는 하루히로를 좋아했다. 여간 좋아했던게 아니었다. 어떤 부분이든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하루히로에 심취해 있었다.  지금의 쿠자크는 어떨까? 싫어하게 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쿠지크도 분명 하루히로를 좋아한다.  다만, 하루히로의 심장을 검으로 관통시킬 수 없냐고 하면, 아마 할 수 있다.  예전의 쿠자크라면, 무슨일 있어도 할 수 없었다. 하루히로를 죽일 정도라면 자살하는 걸 선택할 것이다.  지금은, 흥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쿠자크는 어떻게 변한걸까? 하루히로를 만나면, 어느정도인지 알 것 같다. 죽이면, 좀 더 분명해 진다. 갑자기 죽이지 않아도, 반죽음 상태의 하루히로의 목에 손을 얹고, 정말로, 곧바로 죽인다, 는 상황에서, 쿠자크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할 지, 어떤 말을 할 지, 하루히로는 어떻게 할 지, 가능하다면 시험해 보고 싶다.  세토라는 천막과 천막 사이를 빠져 나가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마가・오도하의 대천막까지는 일직선이다.  대천막의 출입구는 정면에 있다. 이쪽은 뒷쪽이다.  보초는 가까이 있다. 3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무장한 오크들이 서 있다. 투구에서 흘러나온 머리카락이 녹색과 노란색이다. 오도하 일족의 오크인 모양이다. 보초 오크들은 아직 세토라와 쿠자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뭐 시간문제일 것이다. 저 오크들의 바로 옆을 평범하게 걸어 대천막에 다가가려 하니,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세토라가 검을 뽑아 대천막에 꽂았다.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보초 오크들이 이쪽으로 돌아섰다. 개의치 않고 세토라는 검으로 대천막의 두꺼운 천을 뼈대째 세로로 베었다. 오크들이 그들의 말로 뭔가 소리를 지른다. 그때에는 이미, 세토라와 쿠자크는 두꺼운 천의 찢어진 틈으로 대천막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천막의 벽쪽에 있는 뼈대를 많이 부서버렸지만, 그정도로 무너져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이 대천막은 튼튼하다. 대천막 내부는 중앙에 굴뚝이 달린 난방기구가 있고, 낮은 침대 하나, 책상, 의자, 선반, 궤짝, 통따위가 놓여 있다. 침대에 누워있던 오크가 벌떡 일어났다. 이 대천막 안에 있던 것은 저 오크 한명뿐인 모양이다.  「쿠자크」 세토라가 지시하기 전에, 쿠자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 회전이 좀 둔하다는 자각은 있다. 그래도, 이럴 때 해야할 일을 잊어버리고 있을 정도로 얼 빠진건 아니다.  저 오크는 190센치의 쿠자크보다도 덩치가 크다. 키보다 폭과 두께가 대단하다. 길게 풀어헤쳐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수염은 녹색과 노란색으로 나뉘어 염색되어 있다. 띠를 둘러 앞쪽으로 묶어 고정한 기모노같은 옷만 입고 있다. 잠옷일 것이다.  오크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칼집에서 빼내려하고 있다. 쿠자크는 그보다 빨리 오크의 왼쪽 손목에 손킬을 내리쳤다. 오크는 「……」 하며 단도를 떨어뜨렸다. ‘미안해’ 쿠자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크의 명치에 왼주먹을 박아넣었다. 거의 동시에 오른 손바닥으로 오크의 턱을 밑에서 위로 쳐올렸다. 역시 쿠자크의 몸은 상당히 잘 움직여 주는 것 같다. 실로 쾌조의 상태다. 이정도로 마음먹은대로 움직여버리니, 정말 기분이 좋다.   「느그악……!」 오크는 쿠자크를 껴안으려 했다. 순간적으로 달아나려한 게 아니라, 공격을 산택한 점은 대딘하다. 하지만, 오크는 냉정한 판단아래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본능인걸까? 괴로운 나머지 그런걸까? 쿠자크는 오크가 껴안으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피해 배후로 돌아 들어간다. 풀넬슨홀드로 제압하고, 그자세 그대로 침대위로 주저 앉는다. 오크는 물론 저항하며 날뛰려 했다. 기분은 알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마가・오도하 장군」 세토라가 오크의 목에 검을 들이댄다. 「우리는 불사의 왕이 보낸 사자다」 「――윽……」 그이름을 듣자마자, 마가・오도하는 저항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일단, 꽤 놀란 모양이다. 오크병사들이 뭐라 소리치며 대천막안으로 들어왔다. 세토라는 출입구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채 마가・오도하를 바라보고 있다. 순식간에 마가・오도하를 절명시킬 수 있을 듯한 검 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병사들을 물려 줘. 우리들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와가, 긋도……」 마가・오도하는 신음하듯 말하고나서, 병사들에게 뭔가 명령했다. 병사중 한명이 반박했지만, 마가・오도하는 강한 어조로 거듭 명령했다. 병사들은 쿠자크들에게 등을 향하지 않은 채 뒷걸음질로 대천막을 나갔다. 아직도 몇몇 병사들은, 세토라가 대천막에 검으로 베어 뚫은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돌입하려는 기색은 없다. 「놋도라……불사의 왕, 이라고……?」 마가・오도하는 웅웅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인간이다. 인간이……불사의 왕의, 사자, 라고……?」 「그말대로다」 여전히 검을 쥔 세토라의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세토라씨는 어떨까나?하고 쿠자크는 생각한다.  이전의 세토라와 지금의 세토라. 어디까지 변하지 않았고, 어디가 달라진 것일까? 쿠자크가 끈질기게 물어도, 세토라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과묵해진 것은 아닐까? 원래 더 이상은 없을 정도로 침착한 사람이었지만, 한층 더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우리들은 한번 죽었다. 불사의 왕이 그 일부를 나누어 주어서, 우리들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바꾸었다」 「……사람……인간이 아니다, 는 것?」 「과거 최초의 아이들(FIVE CHILDREN), 혹은 〝오공자(FIVE PRINCE)〟라 불리는 자들이 있었다. 알고 계시나?」 「……알고 있다……지금도 이시왕, 데레스・파인, 아키테크라, 갸비코……살아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 주면 무방하다. 요컨대, 새로운 공자(PRINCE)다」 세토라가 정색을 하고 그런 말을 하니까,  쿠자크는 그만 조금 웃고 말았다. 「뭔가 말이 맞지 않고, 세토라씨는 프린스 라기 보다 프린세스 이지만……」 「쓸데 없는 소리하지마」 째려보지도 않고, 주의를 주면, 좀 쓸쓸하다. 이왕이면, 팍 째려보고 거기에 더해 얻어맞거나 차이거나 하고싶다.  나, 마조인가? 하고 쿠자크는 의심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에게서나 그렇게 당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세토라에게 과격하게 얻어맞는건 꽤 좋아한다. 「불사의 왕의, 프린스……」 마가・오도하는, 후ー, 코로 숨을 토하고, 머리를 약간 흔들었다. 「믿어라, 고……말하는 건가?」 「아니」 세토라는 갑자기 검을 거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을 손에서 놓았다. 세토라의 검은 땅위에 깔린 융단 위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강요하는건 아니지만, 믿어주면 좋겠다. 이미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하고 싶다. 쿠자크」 「네」 쿠자크는 마가・오도하를 놓아주자 마자, 침재에서 떨어져, 세토라 옆으로 이동했다.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것은 세토라였다. 쿠자크도 그행동을 따라했다. 「실례를 사과한다. 마가・오도하장군」 세토라는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장군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장군이 통솔하는 병사 한명도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 때문에, 이런 수단을 쓰게 되었다. 부디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쿠자크는 언제든지 세토라의 검을 주워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 야영지에 있는 병사들을 베고 달아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보지 않고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쿠자크와 세토라라면 아마 어떻게든 될 것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수단이다. 「……싸움을, 바라지 않는다」 마가・오도하 장군은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쿠자크가 때려 떨어뜨린 단도나, 침대 옆에 세워져 있는 대치도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야기, 하고싶다. 그렇게, 말했지」 「틀림없이」 세토라는 아직 고개를 들려 하지 않는다. 가만히 바로 아래로 눈을 떨구고 있다. 「왕은 대화를 희망하고 있다. 너희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제왕연합의 시대와 다름없이, 그것이야말로 왕의 원하는 바다」 「친구……」 「덧붙여, 왕은 우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다. 자기 대신에 너희 있는 곳으로 가서, 이 생각을 전해달라고」 세토라의 말을 듣다보니, 불사의 왕의 목소리와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왕이 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떨까? ‘한번 달려 가 줘, 부디, 부탁해’ 하고 말 듣고, ‘네 OK’ 하고 단 두마디 대답으로 승낙하는 일은 과연 없었을런지 모른다. 아니면, 왕이 어떤 왕이든, 관계 없을까? 말하자면, 왕은 생명의 은인이다. 과거의 쿠자크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쿠자크들을 만들어냈다. 어떤 의미로, 친부모이기도 하다. 과연 쿠자크들은 왕을 거역할 수 있을까? 어쩌면, 왕이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터무니 없는 요구라도, 어떤 강제력같은 것이 작용해, 거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뚜렷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니 어떡하지, 역시 그거, 하고 싶지 않슴다’ 하고 거부의 말을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은 든다. 다만, 얼굴이 말야? 물론, 목소리도 그렇지만. 메리씨 구나――하는 부분이 솔직히, 있다. 쿠자크도 이해하고 있는 일이다. 왕은 메리 같지만, 메리는 아니다. 왕의 속에 아직 메리가 있는지 어떤지는 판연하지 않다. 어쩌면, 정말로 이제는 겉모습 뿐 일지 모른다. 그래도, 메리씨 구나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쿠자크는 메리를 좋아했던 게 아닌지. 그녀에게 연예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쿠자크는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히로가 메리를 좋아했고, 메리도 하루히로를 좋아했다. 둘다 순정에 늦깍이라 , 얼마나 진전됐는지 분명치 않지만, 서로 좋아했던 것은 틀림없다. 아마 쿠자크는 메리에게 호의를 가졌다. 사랑해 버렸다. 쿠자크의 성격으로 보아, 좋아졌다면 명확하게 ‘좋아 좋아 빔(BEAM)’을 방출했을 것이다. 자신이 고백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단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격침당했다. 확실히 실연당했는지, 온화하게 회피당했는지, 어느쪽이든, 그후 하루히로와 메리가 가까워졌다. 랄까, 하루히로쪽이 메리와 알고 지낸지 더 오래되었고, 원래 좋아했던건 아닐까? 하지만, 하루히로다. 어쨌든, 하루히로이고. 그 하루히로이니까, 계속 우물쭈물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그래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둘은 착 달라붙어있게 되었다. 정말,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던 걸까? 흥미진지하지만, 불분명하다. 아무튼, 뭔가 느낌이 좋기는 했다. 그때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예전 쿠자크라면 필시 매우 아팠을 가슴이, 지금은 오히려 뛰고 있다. 아주 말야불쌍하구나, 하루히로.이런 일이 있다니있어도 되냐?있어 버린단ー말이냐?진짜, 말이지. 엉망진창 불쌍하구나. 빌어먹을 정도로 충격 받았겠구나, 하루히로.그런일 당하고, 하루히로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죽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하는 이야기 지만, 왠지 모르게 살아남았을 것 같다고 쿠자크는 보고 있다. ‘끈질기다구, 하루히로는’ 게다가, 그 사람, 유난히 운이 좋지 하루히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루히로는 몇번이나 목숨을 부지해 왔다. 어지간이 끗발이 좋지 않으면, 쿠자크 처럼 무심코 죽고 만다. 저건 운이다. 하루히로는 운이 좋다. 여간한 일로는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히로는 분명 괜찮다.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 있다. 불사의 왕은, 마가・오도하 장군, 나아가 오크의 왕 디프・고근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은 듯 하지만, 쿠자크가 말하고 싶은 상대라면, 단연코 하루히로다. 하루히로, 나 말이지, 메리씨와 함께 있다구. 지금은 좀 떨어져 있지만,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고나 할까?말야. 속은 달라도, 역시 메리씨 라구메리씨의 일부가 내 속에 있다구알아 버린거지, 그걸나와 메리씨는 별개 이지만,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지…… 이봐, 나, 메리 좋아 했었잖아? 차인건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루히로와 메리씨가, 같은 느낌으로 되었잖아?최종적, 은 아닌가?계속된 셈이구나나는 메리씨와 함께지만, 하루히로는 그렇지 않고.아마 나, 이렇게 되면 영원히 메리씨와 함께라고 생각해그래도, 말해 두지만, 내가 이러고 싶었던 건 아니야?아무튼 이렇게 되어 버린거야. 그래서,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난 생각하고 있다구. 세토라씨도 있고, 적어도 외롭지 않기는 커녕, 그 반대일려나? 불안같은 건 없어. 착각이겠지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쿠자크가 이런 말을 하면, 하루히로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울려나?분명 흐느껴 울지 않을까?보고싶군 하고 쿠자크는 생각한다. 오열하는 하루히로를, 찬찬히 바라보고 싶다. 그때 쿠자크는 무엇을 느낄까? 매우 흥미가 있다. 세토라는 마가・오도하에게 주선받아 디프・고근 대왕과 면회하기 위한 협상을 담담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건 왕의 바람이고 중요한 일이겠지만, 쿠자크는 하루히로를 만나고 싶다. 언젠가는 그 기회가 찾아오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 어쩔줄 모르겠다. 「어이」 세토라가 쿠자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어? 뭐? 뭠까?」 「듣지 않았던 거냐?」 쿠자크를 향하고 있는 세토라의 차가운 시선은 살기를 머금고 있다. ‘무서워, 무서워’ 쿠자크는 ‘에헤헤’ 하고 웃어 보인다. 「아니? 들었어요? 대충이지만. 어쩐지 말이죠. 어? 이야기, 끝났슴까?」


「제반 사정을 감안하여, 우리는 일단 포로로서 그로즈덴달로 연행되게 되었다. 그후, 어떻게든 디프・고근대왕을 알현할 수 있도록, 마가・오도하 장군이 선처한다」 「호응?」 「포로다」 「에? 그거, 우리가 붙잡힌다는 거? 괜찮슴까, 그걸로?」 「장군의 입장을 생각해. 갑자기, 진중에 돌입해온 자를 손님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야」 「적이 아니라 해서 한명도 죽이지 않았는데 말이지. 누군가와 이야기 한다는 것 꽤 어렵슴다. 뭐, 상관없나」 쿠자크는 누가 뭐라하기 전에 일어서, 몸에 지니고 있던 무기를 모두 풀어 놓았다. 일단, 벌거벗는 쪽이 좋은지 마가・오도하에게 물었지만, 그럴 것 까지는 없다고 해, 옷은 입은 채 두 손을 들었다. 「네네, 묶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지요」 「좀 더 제대로 된 태도를 취할 순 없느냐?」 세토라에게 쓴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런 세토라도 쿠자크와 마찬가지로 무장해제했다. 마가・오도하는 오히려 할말을 잃은 모습이라, 왠지 좀 웃음이 났다. 이렇게 해서 쿠자크와 세토라는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그렇다해도, 손을 뒤로 해 수갑이 채워지긴 했지만, 말뚝에 묶이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한 건 아니다. 아직 동이 틀 때 까진 시간이 있었지만, 마가・오도하는 전군에 기상, 출발 준비를 명했다. 남정군 별대는 일출 전에 행군을 시작했다. 행군 중, 쿠자크와 세토라는 많은 수의 오크 병사들에게 둘러쌓여 걸었다. 장군과 달리 병사들은 들짐승 같은 체취를 풍겨 꽤 힘들었지만,  그들은 원정 후 귀환길이니까, 이게 보통일 것이다. 게다가, 냄새에는 차츰 익숙해졌다.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루코 강을 건넜다. 석조 아치를 이은 다리는 견고한 듯하고, 멋스럽다. 쿠자크는 이미 칸더호수 넘어 그로즈덴달을 보고 있었고, ‘헤, 백조성 좋구나, 흠, 비교적 도시?’ 정도로 생각했는데, 터무니 없었다. 비교적 도시, 같은게 아니다. 장난이 아닌 건물 수다. 오크는 몸집이 크다. 작은 집에서 살 수 없어서 인지, 기본적으로 어떤 건물이든지 큰 것같다.  그로즈덴달 도시 외곽에 펼쳐진 농지도 장관이었다. 길과 방풍림으로 단정하게 구분된 밭에는 파릇파릇한 작물이 우거져 있고, 군데군데 풍차가 들어서 있거나, 가옥과 창고가 모여있거나 한다. 그것이 어디까지나 이어져 있다. 더할나위 없이 문명적이라서 흠칫한다. 오르타나 주변에도 밭이나 목초지는 있기는 했지만, 규모가 다르다. 너무나 다르다.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다리에서 그로즈덴달로 뻗은 도로는,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 도로의 폭이 무려 15M는 돼, 마가・오도하가 이끄는 남정군 별대도 편안히 행진할 수 있다. 전혀 갑갑하지 않다. 남정군 별대는 그로즈덴달 앞에 정지해, 길 옆 초원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거리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좋은 시간 때우기가 되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민간인 같은 오크 남녀노소가 몰려와,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고, 남정군 별대의 병사들에게 꽃잎이나 술 같은 액체를 뿌리기 시작했다. 환호하며 맞이하는 것은 병사들이고, 옆의 세토라는 무표정은 커녕 완전히 무반응을 관철하고 있지만, 쿠자크는 피가 끓었다. 확실히 쿠자크와는 관계없다. 하지만, 조금 정도라면 기뻐하며 떠들어대거나 해봐도, 불평들을 일은 없지 않을까? 세토라에게 확실히 꾸중 듣겠지만. ‘그렇지. 혼날꺼야, 절대로’ ‘상관없나, 딱히, 혼나도’ 「이예ー이! 야호ー오!」 그런 연유로 쿠자크도 소리를 질러봤는데, 아닐까 다를까, 세토라에게 발등을 전력으로 밟혀 「――으갹 !?」 하고 비명을 지르는 처지가 되었다. 「……부서져. 세토라씨. 뼈가 말이지. 분쇄 골절 되어버린다구요. 아파」 「어차피 낫는다」 「그야 뭐어」 그러고 있는 사이, 쿠자크와 세토라는 병사들과는 별도로 호송되어 그로즈덴달에 입성했다. 제반사정이니 뭐니해서, 그곳부터는 마차에 실려 이송되었다. 말은 아니고, 거대한 멧돼지 같은 동물이 견인하고 있으니, 마차는 아닌가? 창문을 모두 닫은 마차는 아닌 마차에는 쿠자크와 세토라이외에도 오크 병사 두명이 올라탔다. 감시일 것이다.  「있죠 있죠, 세토라씨. 저기 큰 멧돼지 같은 짐승, 뭐라 부르는지 알고 있어요?」 「글쎄」 「물어봐요. 우리를 감시하는 오크에게」 「나도 오크 말은 모른다. 궁금하면 네가 물어 봐라」 「아님다. 그건, 귀찮아서」 「너는 질이 나빠졌구나……」 「에? 그래? 원래 이런데? 세토라씨는 예전보다 한층 더 냉냉해졌다구요. 사이좋게 지내죠. 모처럼 말이지. 동료잖아. 이제는 운명공동체 같은 거잖아. 앗, 맞다. 세토라씨, 다음에 말이지, 나랑 아이 만들어 보지 않을래?」 「……뭐라?」 「아이 만들기. 한번, 시도해보지 않을래? 한번이 아니라도 좋지만. 우리들이 만들수 있거나 할런지? 아이. 만든다면, 어떤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흥미 없어?」 「흥미위주냐?」 「아니? 세토라씨라면, 나는 엄청 마구 적극적으로 하고 싶지만. 하고싶다고 말하니 좀 거시기 한데, 음담패설 같은 건 아니니까? 진지한 이야기. 일단 외모가 좋고. 성격도 어떤 의미로, 귀엽고 말이지」 「어떤 의미 라니, 무슨 의미냐?」 「그게 무슨 의미에요?」 「네가 한 소리잖아」 「뭐 요컨데, 좋아한다는 말.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미묘하지만, 좋아해, 나, 세토라씨」 세토라는 한숨을 내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차는 아닐지 모르는 마차는 꽤 오랫동안 덜컹거리며 달렸다. 급기야 마차는 아닐지 모르는 마차가 멈출 때 까지, 감시 오크병 두명은 한번도 입을 떼지 않았다. 마냥 말없이 쿠자크와 세토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참고로 오크병은 둘 다 머리카락을 적색과 청색으로 구분에 염색하고 있었다. 쿠자크는 ‘그 머리카락 멋지네요’ 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무시당했다. 무섭게 인내심 많은 오크들이었다. 체격도 좋고, 주황색 옷에, 은색 갑옷과 투구, 손도끼에 장검이라는 장비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단순한 감시병이 아니라 엘리트 병사일 지도 모른다 마차는 아닐지 모르는 마차에서 내리자, 백조성 바로 앞이었다. 정면으로 올려다본 백조성은 창공에서 날갯짓을 하려는 순백의 큰 새로 보였다. 백조성으로 이어지는 새하얗게만 보이는 돌계단 양 옆에는, 주황색 옷에 은 갑옷, 손도끼, 장검, 덧붙여 창과 방패를 든 오크병사들이 줄지어 있다. 그들의 투구에서 흘러나온 두발도 적색과 청색이다. 아마 같은 씨족 일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쿠자크는 알 리가 없으니, 세토라를 따라할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은 앞 뒤 오크들 사이에 끼여 돌계단을 올라간 뒤, 폭 10미터 이상, 높이는 15미터를 넘을 듯한, 금으로 여러가지 무늬가 상감(象嵌)된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장대(壯大)한 문을 빠져 나갔다. 그 앞은 이미 백조성 내부였다. 백조성은 여하튼 천장이 높았다. 그리고 너무 넓어서,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복도가 뻗어 있는지, 졸지에 판연(判然)치 않다. 창문은 높은 위치에 밖에 없고, 거기서 비치는 빛이, 갈고 닦인 바닥에 반사되고 있다. 무장한 오크도 있고, 평상복이랄지, 윤기나는 기모노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뿐, 무구를 몸에 지니지 않은 오크도 있지만, 보아하니 오크만 눈에 띈다. 오크 투성이다. 쿠자크는 인간――이랄지 전(前) 인간이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의외였다.  꼿꼿이 등을 펴고 기모노같은 옷을 착용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을 묶거나, 곱게 빗어 늘어뜨리거나, 땋거나 한 오크들은, 꽤 멋스럽다. 성안에는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도 있다. 인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크 여성은 상당히 튼튼하지만, 목이 길고 머리가 작아 스타일이 좋아 보인다. 녹색 피부가 왠지 파충류 같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기이하게 비칠지 모르지만, 오크들이 좋아하는 듯한 모발이나 옷의 화려한 색깔과는 궁합이 잘 맞다. 쿠자크가 상상하고 있었던 것 보다, 오크는 멋쟁이 종족인 모양이다. 덕분에 성안을 오래 걷는 동안, 쿠자크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싫증이 나기는 커녕, 기분이 업 되었다. 지나치는 오크 여성에게 말을 걸어서, ‘어떻슴까? 춤 추지 않겠습니까? 같은 말로 꼬시면 안될까? 안되나? 안되겠지. 포로이고. 포로인가? 포로 취급이 아닌 듯 한…… 꼬시는 정도 해도 괜찮겠지? 해? 해봐?’ 한참 망설였지만, 쿠자크는 충동을 억제했다. ‘훌륭하구만,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 여기저기 걷게 된 끝에, 쿠자크와 세토라는 성안의 한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방은 그리 넓지는 않았다. 백조성 규모로 생각하면, 아담한 방이다. 천장도 낮았다. 그래도 4미터 정도는 될 것 같지만, 복도의 천장이 엄청난 높이 였기에, 다소 압박감이 있다. 바닥에는 털이 긴 융단이 깔려 있었고, 비단이나 기모노 같은 걸 입은 오크들이 앉아 있었다. 어떤 오크도 의자를 사용하지 않고, 엉덩이 밑에 방석을 깔고 책상다리를 하고 있다. 분위기적으로 상류층일 것이다. 7명이 있었다. 오크의 나이는 잘 모르지만, 7명 다 젊지는 않은 듯 하다. 여기까지 쿠자크와 세토라를 데리고 온 엘리트 병사들은, 두 사람의 수갑을 풀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한동안, 쿠자크는 할일없이 심심하게, 세토라는 유유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마 상당히 고령일 것이다. 쭈글쭈글하고 뼈가 앙상한 오크가 말했다. 「앉게나」 분명히 인간의 말이었다. 방 구석에 많은 방석이 쌓여 있었다. 세토라가 거기서 방석 두개를 가져와 하나를 쿠자크에게 건넸다. 「어디에 앉으면 되겠슴까?」 쿠자크는 세토라에게 물었는데, 좀 전의 그 고령의 오크가 자신의 왼쪽 옆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에」 일곱명의 오크는 대강 둥글게 빙 둘러 앉아 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원진을 짜고 있는 것은 아니고, 빽빽하게 붙어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간격은 넓고 여유가 있다. 세토라가 고령 오크 왼쪽에 앉아서, 쿠자크는 그 반대편 오른쪽 옆에 방석을 놓고 앉았다. 「너 말야……」 세토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크들은 좀 당황하는 것 같다. 고령 오크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걸까? 몇번인가 왼쪽 세토라와 오른쪽 쿠자크를 번갈아 보았다. 「어? 안됨까? 뭔가, 역시 내가 세토라씨와 나란히 옆에 앉으면 좁을까봐. 밸런스 잡는 쪽이――」 쿠자크는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방으로 들어 왔다. 역시 오크다. 그 오크는 호쾌하게 나타났다. 주황색 옷에 검은색 짧은 겉옷, 백, 적, 청 삼색으로 물들인 외투, 상당히 화려한 옷차림이지만, 자극적이지는 않다. 적색과 청색으로 나눠 물들인 머리카락과 수염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다듬어져 있고, 입술 끝에서 슬쩍 보이는 송곳니는 희고 윤기가 있다. 흠잡을 때 없는 대장부로, 꽃미남이라는 생각마저 쿠자크는 들었다. 머리에 얹은 금 왕관은 오히려 품위있고, 매우 잘어울린다. 「……혹시, 대왕?」 쿠자크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디프・고근인 듯한 그 오크는 쿠자크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방석을 휙 두개 집어 들고, 고령 오크 맞은 편에 그것들을 포개 놓았다. 대왕은 허리에 눈부신 검을 차고 있었다. 그 검을 허리띠에서 빼 바닥에 두고, 방석 위로 엉덩이를 내려 놓는 일련의 몸짓도, 늠름하고 세련되었다.  이것 또한 예상밖이었다. 오크들의 대왕이라고할 정도니까, 좀더 위험할 정도로 거칠고 아무리 봐도 강해, 강면(強面) 중에 강면으로, 마구 흉폭스러워 보이는, 그러면서도 교활스럽달까 빈틈이 전혀 없는, 그런 오크를 쿠자크는 상상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저 오크일 뿐. 선입견은 무서운 것이다. 쿠자크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역자주 - [강면,強面] 위협조의 무서운 얼굴) 「디프・고근 대왕이시다」 고령오크가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 위에 손을 두고 머리를 숙인다. 다른 오크들도 같은 식으로 절한다. 쿠자크도 황급히 오크들을 흉내내 따라하려 했지만, 세토라는 대왕을 보고도 요지부동이다. 괜찮을까? 예(禮)를 표시하지 않아도. 세토라가 하지 않는다면, 관둘까? 대왕이 뭐라고 했다. 오크말일 것이다. 고령 오크가 고개를 들었다. 「이 막실(幕室)에서는 무례강(無礼講)이니, 서로 경의(敬意)만 있으면 과도한 예는 필요하지 않다고, 대왕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역자주 -[막실,幕室] 오크말로 토나크, 디프고근과 어가중御伽衆 간의 전용 회의실) (역자주 - [무례강, 無礼講] 무례를 범해도 상관없는 야자타임) 「……근데, 당신 엄청 유창함다. 나보다 어려운말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쿠자크 입에서 무심코 말이 새어나오자, 대왕이 살짝 웃었다. ‘훗’ 하는 느낌으로, 아마 그건 웃었던 것이 아닐까? 고령 오크뿐 아니라, 대왕도 분명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듯 하다. 그 부분은 염두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해도, 고령 오크의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왕과 이야기하는 것은 세토라의 몫이다. 쿠자크는 세토라의 호위라고 말하고 싶은 참이지만, 솔직히, 지킬 필요도 없다. 「내가! 이 내가 ! 전신전령 ! 널 지킬테니까 !」 같이 쿠자크가 다짐하면, 세토라가 코웃음 칠 것이다. 완전히 묵살 당할 지 모른다. 기껏해야 시중들거나, 아니, 뭔가 돌봐줄 일도 없어서, 그냥 거기 있을 뿐인, 단순한 동행자다. 세토라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니, 편해서 좋다. 세토라는 불사의 왕이 헷갈릴 것 없이 바로 불사의 왕이라는 점. 오크들과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점. 현재 옛 철혈왕국에서 새롭게 불사족들을 탄생시켰고, 이들을 전생자(転生子REVERSION)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등을 디프・고근 대왕에게 설명했다. 맞아. 그대로였다. 그러고보니, 쿠자크와 세토라도 큰틀에서는 전생자로, 불사의 왕은 전생자의 창조자이자 리더다. 전생자라는 명칭은 쿠자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비교적 마음에 든다. 무엇을 숨기리, 세토라는 오크 대왕 디프・고근이 있는 곳으로 파견된 전생자 군대(転生子軍/REVERSIONS)의 사자로, 쿠자크는 단순한 동행자인 것이다. 세토라는 전생자 군대 에게는 목적이 있고, 그것은 불사의 천령(不死の天領/UNDEAD DC)을 지배하고 있는 이시왕과 〝대공大公〟 데레스・파인의 타도라고 말하자, 고령의 오크가 통역하기 전에 디프・고근대왕의 표정이 바뀌었다. 역시 대왕은 인간의 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전생자 군대는 이시왕과 데레스・파인을 배제하고 모든 불사족을 석방시키기를 원한다. 따라서, 오크들과 손잡고 싶다. 누구보다, 오크 대왕 디프・고근과 협력관계를 맺고 싶다. 그래서, 불사의 왕은 대왕과의 만남을 원한다. 대왕은 고령의 오크가 통역을 하려는 걸 막고 마침내 스스로 대답했다. 「나도 만나보고 싶다. 불사의 왕이 진짜 불사의 왕이라면. 하지만, 그 증거가 어디에 있지?」 굵고 배에서 울리는 목소리지만, 결코 위협적인 어조는 아니다. 그런데도 굉장히 위압감이 있다. 위엄이 넘친다. 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인간이여. 자네들이 불사의 왕이 파견한 사자 라는 것. 그것을 어떻게 해 믿으면 좋겠는가? 우리들은 불사의 왕 이름을 안다. 그 공적을 안다. 하지만, 누구도 불사의 왕 그 자체는 모른다」 「우려는 지당하다」 세토라는 차분하다. 너무나 침착해, 쿠자크는 좀 무섭다. 「우리왕도 증거를 댈 길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대왕 폐하께서 우리 왕을 직접 뵈면, 반드시 불사의 왕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자를 파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왔다면 좋았어」 「우리왕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할 수 없었다는 건? 」 「세카이슈가 우리왕을 노리고 있다」 「세카이슈……」 대왕은 일곱명의 오크를 둘러 보았다. 대부분의 오크들은 고개를 저었다. 깜짝 놀란 듯 입을 연 것은 한명 뿐이었다. 언어가 달라서, 그 오크가 대왕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그 내용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다른 오크들도 옆의 오크들과 대화하기 시작해, 방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졌다. 「그 세카이슈라는 것은 검은 것이 가져온 이변을 말하는가? 요즘 각지에서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고령의 오크가 세토라에게 물었다. 세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이 세카이슈다. 지면 아래에서 솟아나와, 우리왕을 삼키려 한다. 불사의 천령 에바레스트에는 우리왕의 옛 육체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150여년전, 이시왕과 데레스・파인이 공모해, 우리왕을 봉인했다. 우리왕은 자신의 일부를 몰래 도피시켜 어렵게 궁지를 벗어났지만, 부활에 오랜시간이 소요되었다. 과거 우리왕이 몸에서 떼지 않고 가지고 다녔던, 세카이슈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는 유물은 옛 육체와 함께 있다. 우리왕은 그것을 탈환하고 싶어 한다」 세토라가 가져온 정보는, 오크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오크들은 얼굴을 벌겋게 바꾸며 차례차례 세토라에게 질문을 퍼 부었다. 오크들 사이의 논란도 일사천리로 격렬해졌다. 대왕은 잠자코 듣고 있지만, 자꾸 뺨을 만지거나 수염을 쓰다듬거나 한다. 마음이 편치 않은 모습이다. 쿠자크는 하품이 나올 듯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별로 졸리지는 않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싫증이 났다. 세토라는 왜 왕의 사자라는 임무를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일까? 쿠자크로서는 솔직히, 달리 할 일도 없고, ‘세토라가 하겠다고 하면 뭐어’ 정도의 마음일 뿐이다. 좀 더 자신 나름대로 뭔가 생각하는게 좋을까? 생각하는 건 서툴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도 곤란하다. 하고 싶은 일. 뭘까? 하고 싶은 일. 바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 그거 다. 하루히로, 인가? 쿠자크가 이것 저것 상상을 하는 중에, 논의가 정리된 것 같다. 디프・고근 대왕은 불사의 왕과 대면할 의사가 있다. 다만, 틀림없는 불사의 왕이라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어떤 자인지 통 헤아릴 수 없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나설 수는 없다. 불사의 왕이라고 여겨지는 자를 그로즈덴달로 초대하는 것은 가능하다해도, 조건 같은 것에 조정이 필요하다든가 한다. ‘하자, 좋아, 만나자’ 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도, 이 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라는 것이리다. 대왕이 이끄는 오크와, 이시왕 파벌, 데레스・파인 파벌의 불사족과는,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분명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다. 남정군에는 불사족도 참여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시왕 파벌, 데레스・파인 파벌과는 다른 세력인 모양이다. 양 파벌의 타도를 노리는 불사의 왕과 오크가 손을 잡는 것은 가능하다. 적어도, 그럴 여지는 있어 보인다. 이후, 오크들은 세카이슈에 대한 정보 공유를 요구해 왔다. ‘응할 의향은 있다’ 는 것이 세토라의 답변이었다. ‘우리와 관계가 좋게 된다면, 알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쯤일까…… 세토라는 옛 철혈왕국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남정군 본대의 철수를 대왕에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대왕은 공격적인 군사행동의 정지를 즉각 명령하는 것을 약속했다. 공격 정지만으로 좋은 건지. 멀리 물러나게 하지 않아도 되는건지. 뭐, 그런 교섭에는, 흥정이랄까, 밀거나 당기거나 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결국, 뭐가 정리되었는가 하면, 앞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무엇인가 결정해 나갈 수 있는 관계 구축의 정지작업을 했다. 라는 느낌일 것이다. 세토라와 쿠자크는 디프 고근 대왕과의 회담 내용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었다. 대왕이 식사를 권해주었지만, 세토라가 시원스레 거절해 버려서 꽤 아쉬웠다. 두 사람은 백조성에서 마차는 아닌 마차에 실려 그로즈덴달 교외로 나간 후 내려졌다. 이것도 세토라의 희망이었다. ‘또 걷는구나’ 하고 쿠자크는 투덜거리고 싶어졌지만, 관두었다. 루코강 다리에 접어들 무렵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강과 그 너머로 펼쳐진 칸더호, 등불로 수 노힌 그로즈덴달의 거리를 바라보니, 제법 멋진 전망이었다. 쿠자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봐 봐, 세토라씨! 엄청 예쁘다고! 절경! 최고지?」 「시시해, 가자!」 「아니. 좀 더 이렇게, 뭐? 마음의 여유랄까. 풍류라는 것 말이지……」 「여유라면 있다. 전망에는 딱히 흥미가 없을 뿐」 「가지자구, 흥미. 인생, 즐기자구?」 「인생?」 「응, 이게, 제 2의 인생인 셈이죠? 나 같은 경우는, 그림갈 전, 그림갈 후, 그리고 지금, 제 3 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즐기지 않는건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그닥 즐기는 것 같지 않다구? 그런 부분이 있다구요. 세토라씨는」 다리를 건너자 부근에 어두운 와인레드색의 외투를 몸에 걸친 자들이 서 있다. 다섯명인지, 여섯명인지. 그들은 길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통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비 오크병사를 제외하면 그들 이외에는 멈춰 서 있는 자들은 없으니, 보기에도 이상하다. 「있, 저 자들――」 쿠자크는 세토라에게 말을 걸었다. 세토라는 고개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입 다물라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외투의 후드를 깊게 쓰고 있다. 피부를 드러내지 않았고,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크일까? 그런 것 치고는 몸이 날씬하다. 불사족인가? 둘은 그들 옆을 지나갔다. 좀 있다 그들이 움직였다. 잠깐 사이를 두고 두 사람이 따라온다. 다리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쿠자크는 전부터 쓰고 있던 대도를 등에 메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철혈왕국에서 발견한 적당한 길이의 검을 허리에 차고 있다. 드워프 대장장이가 벼린 훌륭하게 날이 선 검이다. 쿠자크는 그 검 자루에 손을 둔다. 「해치워도 되죠?」 작은소리로 세토라에게 묻는다. 「기다려」 세토라가 대답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쿠자크는 뒤돌아보자마자 검을 빼 들려 했지만, 레드와인 외투의 그룹이 일제히 후드를 벗고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멈췄다. 역시 오크는 아니다. 불사족도 아니다. 다들 머리색이 밝다고 하기보다 옅다. 좀 거무스름 해 보일 정도로 핏기가 없는 피부다.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는 반듯하지만, 약간 밋밋하다. 「……엘프? 」 쿠자크가 검자루를 쥔 채 중얼 거렸다. 그들은 귀가 뾰족하다. 「회색엘프 군」 세토라가 말했다.  여섯명 중 한명, 선두의 회색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메르델하이드라 합니다. 우리의 주군 차르츠펠드의 명에 따라 남정군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불사의 왕의 사자라는 것 등. 사정은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과연. 메르델하이드님이라면 남정군 부장 중 한사람이었을 터. 파괴된 계곡의 왕의 한쪽팔이구나」 「에헤, 꽤 훌륭한 사람이네」 쿠자크가 주의를 둘러보았다. 「그런 훌륭한 위인이 이런 곳에서 매복해 우리를 기다리는 둥, 어찌된검까?」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그렇다치더라고, 메르델하이드뿐 아니라, 회색엘프들은 식물처럼 표정이 부족하다. 말할 때 입을 최소한만 움직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우리 파괴된 계곡의 회색엘프는 불사의 왕의 충실한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불사의 왕의 재림을 염원하고, 또한, 예견도 하고 있었습니다. 불사의 왕이 재림하셨다면, 우리가 과거 일절 해를 끼치지 않았음을 알고 계실 터, 모든 것이 이시왕과 데레스・파인의 간계에 의한 것입니다. 파괴된 계곡의 회색엘프가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임을 불사의 왕에게 부디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차르츠펠드 왕의 뜻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세토라가 묻자, 메르델하이드는 조금의 틈도 두지 않고 수긍했다. 「불사의 왕이 요청한다면, 우리 주군은 곧바로 회색 엘프들에게 파괴된 계곡을 버리고 친구의 곁으로 급히 달려가라 명령할 것입니다. 만일 불사의 왕이 이시왕과 데레스・파인을 토벌하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총력을 다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공자들은 불사의 왕의 자식이나 다름 없어서, 그간 우리는 그 공자들에 대해 굳이 적대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친구의 자식을 노리는 칼날은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가 그자들을 더이상 자식이 아니라 하신다면, 일절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알았다. 틀림없이 우리 왕에게 전하지」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머지않아 내가 파괴된 계곡을 찾게 될 지도 모른다. 차르츠펠드 왕에게 잘 말씀드려 주길 부탁한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메르델하이드는 품에서 투명한 사각형 패(牌) 같은 것을 꺼냈다. ‘유리인가? 아니면 수정같은 것일까?’ 금속으로 가장자리가 둘러싸여 있고, 나라나 가문의 문장(紋章)인 듯한 도안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받아 가시길. 우리 주군의 이름 아래, 신분을 보장하는 증거입니다」 「잘 받겠소」 세토라가 패를 받아 쥐자, 메르델하이드는 한번 절하고 뒷걸음으로 물러서며, 후드를 덮어 썼다. 회색 엘프들이 발길을 돌려 떠나간다. 쿠자크는 검자루에서 손을 뗐다. 「어라, 괜찮슴까? 회색 엘프는 일단, 오크의 동료겠죠. 오크 대왕은 뭐랄까, 아직 어쩌지 하는 듯한 태도인데, 회색 엘프는 꽤 웰컴 스럽잖아요. 하지만, 이런 곳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우리를 접촉해 와서 말이지. 오크에게 바로 알려지지 않겠어요?」 세토라가 코웃음 쳤다. 「너도 전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건 아니구나」 「곧바로 그런 식으로 바보 취급하고. 확실히 머리 쓰는 건 특기는 아니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건 아니라구요, 나?」 「그래서, 생각 하지 않는 건 아니구나 하고 말했을텐데」

「어, 그렇구나, 그럼, 칭찬을 받은 거구만」 「칭찬은 아니다. 나는 빈정거린 것이야. 즉, 폄하한 거다」 「결국, 바보 취급한 거 아님까? 이러니까, 계속 그렇다니깐. 날 깔보면 즐겁슴까?」 「하찮은 일을 할 필요가 있나?」 「엥? 뭔소리?」 세토라는 대답도 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쿠자크를 놔두고 갈 생각은 없는 듯 빠른 걸음은 아니다. 쿠자크는 곧 따라 붙어 세토라와 나란이 걸어 갔다. ‘하찮은 일을 할 필요가 있나?’ 그 질문은 ‘하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싫으면 싫다’ 고 말한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원래 세토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니, 의외로 그런 것도 아니였을까? 세토라 나름대로 분위기를 읽거나, 여러가지를 참고 견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길을 벗어나 칸더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나아간다. 어젯밤에도 날씨가 좋았지만, 오늘밤도 바람이 없어서 파도가 약하다. 호숫가 이 일대는 돌멩이가 많아 걷다보면,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저기, 세토라씨, 아까 이야기지만」 「아까라니, 언제 이야기 말이냐?」 「제2의? 제3의? 인생, 즐기자는 이야기. 세토라씨는 즐기고 있어?」 「불사의 왕에게는 관심이 있다. 그 주변의 상황이나, 과거의 경위에도 말이지. 오크 대왕도 꽤 재미있을 것 같은 남자였어」 「어.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흠.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뭐, 사람 제각각인가?」 「네 말을 빌리자면, 나 나름대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요? 나도 그래. 이왕이면 더 즐기고 싶고, 그럼 난 뭘 하면 즐거울까? 생각하고 있는 중」 「마음대로 하면 돼」 「아니, 서로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건 분명 그렇겠지만, 그럼 이야기가 중단되어 버리잖아? 적당히 흘러 들어도 좋으니까. 들어 봐요, 내 말」 「들을 수 있는 만큼 들어 주지」 「하루히로를 죽이는 게 어떨까 하고」 쿠자크는 말하면서 웃고 말았다. 손으로 입을 누른다. 꾹 다물고 참으려 해도,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횡격막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세토라가 곁눈으로 쿠자크를 바라보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말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찬다. 「하루히로를 죽여버릴까 하고」 「어째서?」 세토라는 평탄한 목소리로 물었다. 쿠자크는 계속 웃었다. 너무 웃다가, 눈물이 났다. ‘참을 수 없어 위험해 ㅋ’ 세토라가 한숨을 쉬었다. 적당히 어이가 없어지고 말았다. 진작에 어이가 없었겠지만, 쿠자크로서는 그다지 웃고 싶은게 아니라, 웃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아니, 있잖아요? 그런건 아니라구요? 밉살스럽다든가 하는건 아니니까 말이지? 세토라씨도 알고 있겠지만, 나, 하루히로 좋아했으니까? 했었다고 할지, 지금도 좋아 한다구. 만나고 싶은 사람 넘버원 이니」 「만나고 싶은 건지. 죽이고 싶은 건지. 어느쪽인거냐?」 「음, 둘다, 일려나? 나랑 만나면 하루히로, 어떤 얼굴을 할까? 생각하면, 두근두근하고.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하루히로를 이손으로 죽이면, 어떤 느낌일지, 라든가. 뭐랄까. 자신의 반응? 감정이라든가. 맛보고 싶군요. 잘 모르겠지만, 하루히로를 죽일 때가 첫번째, ‘와아하ー ’ 라고 생각할 듯 하니까. 다른 누구를 죽이는 것 보다도 말이지. 자신이 죽는 것은 한번, 체험 끝났고, 이번에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랄까」 「과연」 「세토라씨도 알 수 있어? 이 마음」 「나는 특별히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이해는 할 수 있다, 고? 세토라씨 답네」 「나 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네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순 없군」 「뭐어. 나, 복잡한 생각은 안하니까. 세토라씨는 확실히 복잡 괴기하니, 나로서는 해명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진짜로 나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 예를 들어, 단지 하루히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일도 실은 나, 제대로 생각하고 있슴다」 세토라가 걸음을 멈추고 쿠자크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눈을 깜박인다. 아무래도 흥미를 끌 수 있었던 모양이다. 「뭐지. 말해 봐」 「왕에게 부탁할까 하고」 「뭘?」 「우리들하고 똑같이 만들어 주면 안될까 하고」 

「우리들과……똑같이?」 「맞아, 그게, 가능한 건지 어떤지, 난 좀 판단이 서지 않으니 확인 해 봐야겠지만. 하루히로 죽여서, 우리들이랑 똑같이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하고」 쿠자크는 내키는대로 좌우 양손으로 세토라의 양 어깨를 잡았다. 세토라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쿠자크를 바라보고 있다. 「있지. 세토라씨는 어떻게 생각해? 그 하루히로가 어떻게 될지. 볼만할 꺼라 생각하지 않아? 어떻게 되든 하루히로는 하루히로 고, 난 하루히로 싫어 졌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하루히로니까, 죽여도 분명 날 용서해 줄테고, 설령 절대 용서하지 않을 듯 되어도, 그건 그것대로,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리는 건데? 같이 기대되어 버려 즐겁고 말야? 어느쪽으로 굴러가도, 엄청 즐거울 것 같은 전개밖에 떠오르지 않는달까?」 또 웃어버릴 것 같다. 참지않음… 웃으면 제대로 말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세토라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다. 「그러니까 말야, 나, 하루히로와 만나면 죽이고 싶다구. 비교적 그것만 생각하고 있어. 아마 하루히로는 살아 있을 것이고. 죽어 버렸다면 실망이지만, 내 감으론 괜찮을 꺼라 믿고 있고, 하루히로를 죽이고 싶어져서. 왠지 열띠게 말해 버려 미안? 아무래도 열 내버리는 군. 하루히로와 만나고 싶다. 보고 싶어. 죽이고 싶다구. 하루히로, 죽이고 싶어. 하루히로도 우리들이랑 같아지길 바래. 있지, 어떻게 생각해?」 세토라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괜찮은 생각이지 않느냐?」 입언저리가 풀어진다. 입술이 조금 벌어지면서, 양끝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재미있겠어」



댓글 3개:

  1. 18권 마지막 에필로그에 3년 지난 시점이 살짝 그려졌었죠. 유메와 란타사이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히로는 여전히 메리를 되돌리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불사족이 되어버린건 아닌듯한데, 그럼 쿠자크의 계획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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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메리는 본인 인격일때는 확실하게 메리였었어서
    이번편 초반 보고 세토라랑 쿠자크도 초반에반 기괴했지 적응되면 멀쩡한건가 들쳐매고 왔어야 했나 싶었는데
    심리묘사 보니 쿠자크는 완전 뒤틀렸네요...

    세토라도 하루히로를 죽이자는 말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하다니 나도 맛이 갔구나 같은 웃는 건지 우는건지 모르겠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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